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목차
1. 서론: 헬리코박터 파일로리, 단순한 세균을 넘는 병리적 기전의 시작점
헬리코박터 파일로리(Helicobacter pylori)는 인류의 위장 내에 가장 널리 존재하는 그람음성 나선균이다. 그러나 이 세균은 단순한 감염체가 아닌, 위점막의 만성 염증을 유발하고 위축성 위염, 장상피화생을 거쳐 위암까지 유도할 수 있는 병태생리적 연결고리로 작용한다. 본 글에서는 위염의 발생과 진행에 있어 H. pylori가 어떤 역할을 하며, 어떻게 진단하고 치료해야 하는지를 병리학적 근거 중심으로 고찰한다.
2. 헬리코박터 파일로리의 생물학적 특징 및 병원성
2-1. 위산 환경 내 생존 메커니즘
H. pylori는 urease, catalase, oxidase 양성 세균으로, urease를 통해 요소를 암모니아와 이산화탄소로 분해하여 위산을 중화한다. 이를 통해 세균은 위 점액층 아래의 상피세포에 접근해 정착하며, pH 2~3의 산성 환경에서도 생존 가능하다.
2-2. 병원성 인자
- CagA (Cytotoxin-associated gene A): 위 상피세포 내로 주입되어 SHP-2 인산화효소, MAPK 경로를 자극 → 세포 증식, 분화 이상 유발
- VacA (Vacuolating cytotoxin A): 상피세포 내 공포화 및 미토콘드리아 기능 장애 유도
- BabA, SabA: 점막 상피에 대한 부착력 증가
- DupA, OipA: 면역반응 유도 및 만성 염증 유지에 기여
이들 병원성 인자는 단순한 감염을 넘어, 위점막 세포의 유전자 변형, 염증의 만성화, 세포 사멸을 동반하는 조직 재형성 과정을 유도한다.
3. 위염 발생에 있어서의 병리기전적 기여
3-1. 초기 감염과 급성 염증 반응
감염 초기에는 위점막 상피의 손상과 함께 **급성 점막 염증(호중구 침윤)**이 유발되며, 상복부 통증, 구역감, 발열이 동반되기도 한다. 대부분은 경미하거나 무증상으로 지나가며, 감염이 지속되면 만성 위염으로 이행한다.
3-2. 만성 위염으로의 전환
H. pylori가 장기적으로 위점막에 존재하면 림프구와 형질세포 중심의 염증세포 침윤이 점막 고유층에 지속된다. 이 과정에서:
- 위산 분비 세포인 벽세포가 점차 파괴됨
- 위 선구조의 소실과 함께 위축성 변화가 나타남
- 선분비 기능 저하로 인해 장 상피화생으로의 전환이 유도됨
3-3. 병리학적 특징
- 조직검사상 점막 고유층에 림프 여포성 조직 형성
- H. pylori 주변에서 IL-1β, TNF-α, IFN-γ 등의 염증성 사이토카인 분비 증가
- NF-κB 경로의 지속적 활성화 → 세포 증식, 항세포사 기전 가동
4. 위축성 위염, 장상피화생, 위암으로의 이행: Correa Cascade
콜롬비아 병리학자 Felipe Correa는 **H. pylori 감염이 위암의 원인이라는 다단계 모델(Correa cascade)**을 제시하였다. 이 모델은 다음의 병태 단계를 거친다:
- 만성 비위축성 위염
- 위축성 위염 (Atrophic Gastritis)
- 장상피화생 (Intestinal Metaplasia)
- 이형성 (Dysplasia)
- 위선암 (Intestinal-type Gastric Adenocarcinoma)
특히 장상피화생의 대장형(subtype IIb, sulfomucin 발현)은 위암 발생과 높은 상관관계를 가지며, H. pylori 제균 치료는 위축, 장상피화생 진행률을 유의하게 낮추는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.
5. 진단 전략: 감염 여부 및 조직 병변 평가
5-1. 내시경적 소견
- 위전정부 발적, 점막 비후, 위축성 변화
- 장상피화생은 백색 반짝임 점막, 혈관 투시성 저하로 관찰됨
- NBI(Narrow Band Imaging)를 이용한 고해상 관찰 시 민감도 증가
5-2. 조직학적 진단
- Updated Sydney System에 따라 5부위 생검 권장
- H&E, Giemsa, Warthin-Starry 염색으로 세균 확인
- 조직 내 염증 점수, 위축도, 장상피화생 동반 여부 평가
5-3. 비침습적 진단법
- 요소호기검사(UBT): 민감도 >95%, 제균 치료 전·후 선호
- 대변 항원검사 (HpSA): 치료 후 감염 지속 여부 확인에 적합
- 혈청 항체 검사: 과거 감염 확인, 현 감염 구분 어려움
6. 제균 치료의 임상 근거와 전략
6-1. 치료 적응증 (대한소화기학회 기준)
- 위염, 위궤양, 십이지장궤양
- 위축성 위염, 장상피화생
- 조기 위암 절제 후, 위암 가족력 있는 환자
- MALT 림프종, 장기 NSAIDs 사용자
6-2. 표준 요법
- 1차 3제 요법: PPI + 아목시실린 + 클래리스로마이신 (7~14일)
- 내성 우려 시 4제 요법: 비스무트 + 메트로니다졸 + 테트라사이클린 + PPI
- P-CAB 기반 치료: 보노프라잔 + 아목시실린 ± 클래리스로마이신 → 내성 대체요법으로 부상
6-3. 치료 후 추적
- 제균 여부는 최소 4주 후 요소호기검사로 평가
- 제균 실패 시 항생제 내성 검사 후 개별화된 대체요법 필요
7. 국내 감염 역학 및 위염·위암 발생 현황
- 대한민국 성인의 H. pylori 감염률은 약 43~55% 수준, 고령층에서 더욱 높음
- 위암의 지역별 분포는 감염률과 밀접하게 연관
- 최근 국가검진사업에 제균 치료 항목이 포함되며 예방적 개입 증가 추세
그러나 여전히 진단율, 치료 이행률, 추적 관리 체계에서 개선 여지가 크며, 의료진의 조기 개입 및 표준 진료지침 이행이 중요하다.
8. 결론: 위염과 위암 사이, H. pylori는 개입 가능한 병태의 축이다
헬리코박터 파일로리는 단순한 병원균을 넘어, 위염의 발생, 점막 구조 손상, 조직 재형성,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위암에 이르는 병리적 연속선의 첫 단추이다.
소화기내과 전문의로서 강조하고 싶은 점은 다음과 같다:
- 감염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된 감염이 위점막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다.
- 헬리코박터 제균은 단순한 증상 조절이 아닌, 조직 수준에서의 질병 경로를 차단하는 예방 치료다.
- 환자의 증상이 경미하거나 없어도, **조직학적 변화(위축, 장상피화생)**가 동반되었는지 여부에 따라 중재 전략을 조기에 결정해야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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